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디즈니’가 순수하다고?

2008. 6. 8. 12:52좋은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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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오리 사자 돼지…디즈니가 창조한 동물개릭터들은 지금 중년이 된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또렷이 남아있다.이중에서도 ‘깨끗하고 귀여운 쥐’ 미키 마우스는 약자의 상징이면서 강한 고양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캐릭터로 온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디즈니왕국의 대표적 아이콘이다.미키의 버전업이며 슈퍼맨을 패로디한 ‘마이티 마우스’ 역시 핍박받는 쥐들을 구원하는 정의의 수호신으로 또 한 세대의 귀여움을 샀던 기억도 떠올려 보라.

그런 기억과 함께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The Disney and the End of Innocence)을 읽는다면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이 책은 미국 어린이들의 꿈을 생산해온 월트디즈니사가 사실은 어떤 대기업보다 위선적이고 위험한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저자 헨리 지루는 미국의 진보적인 문화비평·교육이론가로 ‘미국문화의 디즈니화’를 경고하며 다각도의 신랄한 비판을 시도한다.

월트디즈니사는 아동기의 순수함을 상품화하면서도 너그러운 기업의 이미지로 다른 거대기업들이 수없이 당한 비판을 피하는 행복함을 누려왔다.비판은커녕 연약한 어린이들을 보호해주는 ‘이상적인 대리부모’라는 이미지를 미국인들의 가슴에 심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디즈니를 특정한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정치적 권력 집단이라고 비판한다.단순히 오락과 재미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라 공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교육모델을 개발해 미국 어린이들의 의식을 디즈니의 사업에 맞게 소비지향적 시민으로 ‘세뇌’해온 기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즉 디즈니사가 창안한 ‘교육+오락’(에듀테인먼트) 개념이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백인우월주의,성차별,맹목적 애국주의,보수우익 성향 등이 기저에 깔린 디즈니 사업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비판력 확보가 절실하다.이 점은 세계적 기업이 된 ‘마이티 미키’가 최근 인종·성차별 타파를 표방하고 내놓은 일련의 애니메이션조차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신식민주의와 백인우월 등을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알라딘’의 남녀주인공은 여전히 백인의 외모를 닮은 반면 악인들은 매서운 눈매와 턱수염,우뚝한 코를 가진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아랍계 어린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에 대해 창피함을 느낀다.디즈니의 주인공들은 미국식 표준영어를 쓰지만 악인들은 심한 외국어 억양이나 빈민가 흑인·히스패닉계 말투를 사용한다.저자는 미국내 소외계층과 소수민족에 대한 교묘한 차별을 지속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하고 있는 미키왕국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디즈니 영화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즈니는 영화·언론사업,디즈니공원 외에도 ‘축하 마을’(Celebration Town) 등 부동산업자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플로리다 디즈니월드 옆에 헐값으로 분양받아 건설한 ‘축복받은 마을’로 디즈니공원의 판타지를 실제의 주거공간으로 만든다.리프킨의 최근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접속권리를 사는 행위로도 언급된 축하마을은 폭력과 더러움,불의로 가득찬 외부세계로부터 완벽한 차단과 보호를 받는 백인중산층을 위한 공간이다.

이 마을의 ‘축하학교’는 더 위험한 개념이다.공·사립 협력학교란 핑계로 플로리다의 한 지방교육청이 이 학교에 투자한 1800만달러는 ‘지붕이 새고 전기배선이 낡아’ 어려움을 겪는 다른 가난한 공립학교 보수비용에서 전용된 것이다.그리고 이 축하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80%가 축하마을에 사는 고소득층 백인자녀들이다.

미국의 과거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중산층 가정에 공급하는 대신 오락 추구를 미국민이 반드시 수행해야할 의무로 만든 디즈니의 테마공원들은 어떤가.‘모험의 나라’ 개척관은 디즈니사의 미국역사 해석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의 단적인 예다. 이곳에는 신대륙의 진짜 주인이었던 인디언 학살에 대한 조금의 기억도 없다. 역사의 불쾌한 측면이 의도적으로 거세된 모험의 나라에서 미국어린이들은 과오가 전혀 없었던 잘나고 위대한 조상들에 대한 기억들을 이식받는다.정치적·경제적 의도가 순수함이라는 의미로 가장될 때 단순한 기만 이상의 위험이 존재한다.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는 비판은 다국적 기업 디즈니사의 세계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지구촌 어디서나 경청할 만하다.롯데월드 에버랜드 등 우리의 놀이공원 모기업들에 대해 우리가 미국인들이 디즈니사에 갖는 신뢰를 갖지 않음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고 생각한다.태어나서 처음 몇년동안에 많은 것들이 백지 위에 기록될 것이다.기록될 것들의 질적 측면은 아이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적어도 출발만은 순수했을 디즈니제국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이 말은 디즈니를 넘어 어린이문화사업을 표방한 모든 기업행위에 중단없는 감시와 비판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하지 않는가.

/김현덕기자
h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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